얼마전 한국에서 용산 참사때 돌아가신 주민들의 장례식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용산참사...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참사요 참극이었습니다. 용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습니다. 정말로 많지요. 그래도 이 블로그에서는 좀 참아보렵니다. 

그 비슷한 사례가 LA에도 있습니다. 

Chavez Ravine. 

LA에서 도시계획 혹은 공공정책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이름입니다. 



아마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꽤 많을 겁니다. 박찬호선수가 역투하던 LA Dodgers 홈구장이 자리한 바로 그곳입니다. 원래는 19세기 Los Angeles County의 Supervisor (감독관 - 시장 비슷한 직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의 이름인 Julian Chavez를 기념해서 이름붙인 LA의 중남미계 거주지역이었습니다. 미국 PBS의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http://www.pbs.org/independentlens/chavezravine/cr.html),  주민들이 직접 학교와 교회를 설립하고 운영했을정도로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비극은 1949년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습니다. 연방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LA시는 바로 10,000 호 규모의 공공주택단지 (Public Housing Project) 단지 건설을 결정합니다. 이전글에서 소개했던 Jordan Downs Housing Project의 건설과 거의 같은 시기였습니다. 이 신규 1만여세대 Housing Project로 대상지로는 바로 Chavez Ravine 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일단 LA 도심에서 가까운 지리적 위치, 넓은 공간, 그리고 '저렴한' 개발비용.... 거기에 이 Chavez Ravine을 '더러운 멕시칸들이 지저분한 판자집에 득시글거리며 몰려사는 문제많은 동네'로 생각했던 정치인 그리고 도시계획 관련자들의 시선도 한 몫 했습니다. 

1950년 7월, 드디어 시 정부는 Chavez Ravine 주민들에게 자진퇴거를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재개발후에 새집에서 멋지게 살 수 있을것이라는 장밋빛 약속도 건네주었습니다. 몇몇은 떠나고, 다른 사람들은 퇴거명령을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주로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거나, 아니면 경제적 형편이 허락치 않는 사람들이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시 정부는 바로 이 남아있는 주민들을 "Squatter" - 즉 불법 점거인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에게 더 이상 호의를 베풀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 시 정부는 보상금 액수를 점점 줄이는 강경책으로 대응했습니다. 가뜩이나 경제적 여유로 이주를 거부한 사람들의 목을 더 죄는 꼴이었습니다.  이래서 Battle of Chavez Ravine 이 시작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Chavez_Ravine) 결국에는 Eminent Domain (토지수용권)을 행사한 시 당국이 중장비와 경찰병력을 동원, 주민들의 반발을 분쇄하고 강제철거를 완료합니다. 이게 1952년 경의 일입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빠른 시간내에 마무리 짓도록 하지요. 마지막으로 관련된 비디오 하나 올리려 합니다. 

Posted by 하린/가빈대디 하린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