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다시 씁니다. 

조셉 매카시 (Joseph McCarthy)라는 이름 기억하십니까? 그 이름보다는 무지와 억지의 상징이 되어버린 "매카시즘"이라는 단어로 더 잘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네. 어느날 갑자기 TV에 나와서 "내 손에 "빨갱이" 명단이 있다"라는 말 한마디로 미국을 반공주의의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그 사람입니다. http://navercast.naver.com/worldcelebrity/history/568 를 보시면 잘 나와있네요. 

이 사람이 Chavez Ravine 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매카시즘의 광풍속에 Chavez Ravine 에 세우기로 했던 Elysian Park Height Project Housing (저소득층 주거시설)이 '사회주의적' 이라는 비판이 등장합니다. "사회주의적 주택을 반대하는 시민모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Citizens Against Socialist Housing" 이라는 단체가 주장한 이 논리에 넘어간 LA 시민들이 공화당 성향의 Norris Poulson 이라는 인물을 시장으로 선출합니다. 당선되자마자 이 인물이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네. 바로 Elysian Park Height Project Housing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한 일이었습니다. 이게 1953년 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제 올린 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1952년에 '부지확보' 가 끝났습니다. 다른말로 하면 1952년에 집은 다 밀어놓고 평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지요. 땅은 다 밀었는데, 마땅하게 지을 것은 없는 썰렁한 상태가 꽤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이러고 얼렁뚱땅 넘어가던 중에 1956년, LA시는 Brooklyn Dodger 야구팀에게 LA로의 연고지 이전을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홈 구장 부지로는 바로 이 Chavez Ravine의 공터를 지목합니다. LA의 주민들은 1958년 주민발의안을 통해 야구장 건설 재원마련을 위한 채권 발행을 승인하고, 1961년 공사를 완공합니다. 바로 이 야구장이 박찬호 선수가 역투했던, 그리고 최희섭 선수에 열광했던 Dodger Stadium 입니다. 이런 역사때문에 요즘도 심심치 않게 Dodger Stadium을 Chavez Ravine 이라고 일컫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재개발에 얽힌 비극적인 사연은 대략 거의 비슷합니다. Chavez Ravine 의 스토리 전개는 거의 비슷하게 용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마치 한국의 막장드라마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 재개발이라는 막장드라마도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도식화해볼까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재개발 사업 결정 -> 불충분한 보상 -> 주민 반발 -> 물리적 진압 -> 사고

용산과 Chavez Ravine의 차이가 있다면, 용산의 경우는 끔찍한 인명사고로 결말을 낸 반면, Chavez Ravine은 야구장을 지었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만, 비극은 분명 같은 비극입니다.그 야구장은 누군가의 눈물 위에 지은 야구장이니까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 재개발과정에서 도대체 '공공의 이익'이 뭡니까? 재개발에 과연 그런 "공공의 이익"이 있기나 합니까? 솔직해집시다. '땅값'만 있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게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 일입니까? 그럼 만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당신의 집을 헐값에 헐어버린다면, 당신은 좋아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얻는것이 더 크지 않냐?"
->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 '얻는 것'을 계산합니까? 용산 재개발의 땅값이 과연 인명보다 소중합니까? 야구장 관중의 기쁨이 Chavez Ravine 주민의 눈물보다 더 소중합니까? 그건 누가 어떻게 계산합니까? 

여러모로 Chavez Ravine은 미국 도시계획가들에게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단어입니다. 약자를 보호해도 모자랄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그 재산을 강탈하다시피 한 생생한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무리 Chavez Ravine을 배워도, 이런 무지몽매스러운 사고방식이 계속 판을 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2년 정도전의 일입니다. 어쩌다가 어느 도시계획과 학생들이 학기말 프로젝트로 작성한 보고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보고서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의 일환으로 Urban Farm을 만드는 정책이나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LA에서 멀지 않은 Ventura County인근의 농장에서 농작물을 생산하면, '교통이 편리한 어딘가' 에 저장/배송 시설을 만들어 전국으로 운반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A devil always hides in the details - 악마는 언제나 세부사항에 숨어있다" 라고 했던가요? 경악스러운 내용은 방법론에 있더군요. 문제의 '교통이 편리한 어딘가'를 결정하면서 LA의 South Central - 저소득층 주거지역 - 을 지목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저장/운반시설 건설에 필요한 부지는 Eminent Domain - 토지 강제수용 - 으로 확보하는게 좋겠다는 말이 있더군요. 논리도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토지 가격이 싸니까, 그 만큼 돈도 덜 든다..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Chavez Ravine에서 우리 도시계획가들이 사용했던 논리와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논리구조였습니다. 보고서 읽으면서 얼마나 경악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도시계획가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절망을 안길수도 있으며, 상처를 남길수도 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이론모형, 구호, 숫자 그리고 그림의 이면에는 항상 누군가의 눈물이 있는 법입니다. 아니, 그 눈물은 우리 자신의 눈물일 수 있습니다. Chavez Ravine 공사 당시 LA시 주택국의 도시계획부국장이었던 Frank Wilkinson의 말입니다. 

"It's the tragedy of my life, absolutely. I was responsible for uprooting, I don't know how many hundreds of people from their own little valley and having the whole thing destroyed"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사건은 제 인생의 비극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몰아내고 그 전부를 파괴했던 책임이 저에게 있습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역사를 망각하는 도시계획가는 어떨까요? 미래가 있을까요?



Posted by 하린/가빈대디 하린대디